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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에 작성한 수기입니다. 가볍게 일기쓰듯 쓴 글인데 최우수 후기로 선정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저의 (다소 지나치게 진솔한)글에 좋은 평가를 보내주신 운영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육학사와 2급 중등학교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 2015년부터 올해 여름까지 사교육업계에서 입시컨설턴트 겸 강사로 일해왔습니다. 한 직장에서 꾸준히 근무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프리랜서로, 때로는 회사나 학교에 소속되어 부산과 경남 지역에 기반을 둔 교육노동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이 5년간 저 자신의 직군과 관련해 주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교육복지였는데요, 특히 학생들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그들의 읽기 역량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타나고 보호자의 교육수준은 학생의 교육수준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교육노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당연하게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니 한국의 교육열이 몇십 년간 그렇게 높았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개별 각급학교나 교육청, 교육부 등 공공기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수혜 당사자인 학생 자신들도, 저와 같은 교육노동자와 보호자들도 충분한 고민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나아가서 정부에 어떤 서비스를 요구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고민을 안고 생활인으로서 노동을 계속해가던 중, 작년 가을에 저는 호기심 반, 지적 목마름에 대한 욕구 충족 반으로 충동적으로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등록하였습니다. 만 29세에 학부 1학년이 된 것입니다(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방송통신대학교 편입을 고려하시는 학부졸업생이 계시다면, 방통대는 2학년 편입도 가능하다고 하니 3학년으로 편입하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 싶어도 저처럼 1학년 과정으로 시작하는 것은 재고해보세요^^;).

 

낮에는 직장인, 저녁과 휴일에는 학생으로 살면서 새로운 공부에 대한 재미를 느끼던 와중에 과학기술원에서 연구자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설명을 듣고도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어요. '기획자라고 생각하기에는 기술적 역량이 많이 필요한 것 같고, 엔지니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술적 역량보다 발상력이 중요한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알기 어렵다.' 이것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저의 첫 인식이었습니다. 물론 친구가 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였기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인지도 궁금하였지만요. 이 친구는 이후 저에게 공공 빅데이터 청년인턴십 양성과정이 있으니 지원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적극적으로 조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작년의 저에게, 딱 일 년 뒤에 이직을 고려하게 되는 시기와 맞물려 이 양성과정에 들어오게 될 거라고 말해준다면 저는 깜짝 놀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풍이 강한 사범대학교에서 첫 대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학우들처럼 임용고사를 치르고 교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부터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해두자면 여기서 말하는 보수적 성향이란 정당정치적 측면, 즉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 혹은 어떤 공약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기술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무감한 특성을 가리킵니다. 당연히 모든 교육노동자가 그러한 것은 아니고 어느 집단이나 그러하듯 반드시 예외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현직 교사들은 대채로 안정지향형에 가깝습니다. 저는 집단 내부인이면서 예외적인 개인으로서 늘 교육노동자들의 이러한 성향 및 업계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요.

 

그런 한편 저는 다른 교육생들과 제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이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양성과정을 전부 이수하고 인턴십까지 끝낸 뒤인 내년 연초에 저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생각해볼 때, 즉 과정의 최종적인 상태나 목적을 고려할 때 취업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학계에 적을 두고 있는 학자가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노동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생활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속집단의 평균적인 인식수준과 비교해 연구자적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의 단기적인 목표는 제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다층적인 정체성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듦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입니다(이러한 목표를 설정하게 된 데는 비록 데이터 사이언스 과정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수했다 한들 현업에 뛰어들어 완벽하게 프로 기술자로 일하는 것이 몇 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 바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당연히 작용하였습니다).

 

 

어제 퇴근 후에 저는 저희 팀이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춘식 대표님이 추천해주신 <팩트풀니스>를 완독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읽다 보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데이터 과학 분야와 유관한 범주 내에서 제가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은 <이상한 정상가족: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이며, 이 다음으로 읽을 책은 <보이지 않는 여자들>입니다. 두 책의 공통점은 <팩트풀니스>가 그리는 긍정적인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여성과 아동이라는 소수자 집단이 배제되고 있으며, 왜 그들이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위치하는지를 통계를 기반으로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두 권 다 아직 읽는 중입니다만 여기저기에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과 공학 및 기술을 대립적인 범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 각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 이 네 가지 영역들 그리고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예술 등의 기타 영역들은 서로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지점에서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통계 없이 현상만을 볼 수 없고 통계 이면의 현상을 외면할 수도 없다는 한스 로슬링의 견해와 같습니다. 저 역시 본 과정을 이수하는 중에는 선행지식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서 활동할 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리라 생각되는 요인은 학부 전공이 통계인지 아닌지, 컴퓨터 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제가 지금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통섭적 인식에 기반해 바라보는 통찰력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본 양성과정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제가 세상을 보고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면서 가지지 못했던 역량과 관점을 고민해볼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제게 없는 다양한 역량을 가진 동료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사회적 문제를 탐지하는 과정에서 지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서, 10년 뒤에도 올 2020년의 가을은 전세계적 유행병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